[책마을] 골목골목 거닐며 찾아낸 옛 서울 풍경

입력 2022-10-28 18:49   수정 2022-10-29 00:50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 간송 전형필의 북단장, 근원 김용준의 노시산방….

서울 성북동은 한때 작가들이 모여 사는 ‘문인촌(村)’이었다. 1930년대 서울 인구가 폭증하자 한양도성 외곽을 택지로 개발하던 때다. 문인들은 북악산 가까이 고즈넉한 이 동네에 집필실 겸 가정집을 꾸렸다. 서울 사대문 안 중심지에 비하면 성북동은 집값이 쌌다. 서울 변두리치고는 전차 정거장이 가까워 교통편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날 파주 신도시에 문인과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사정과 비슷하다. 이런 풍경은 성북동이 부촌의 대명사가 된 것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드라마 속 부잣집 사모님들이 전화를 걸면서 “여기 성북동인데요”라고 하는 대사를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최근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12권(서울편 3·4)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친 서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사진)은 서촌, 인사동 등을 거닐며 책을 썼다. 11권은 서울 사대문 안의 오래된 동네와 북한산의 문화유산을, 12권은 봉은사, 가양동 등 한강 이남 지역을 다뤘다.

이번에 내놓은 두 권의 책은 거창한 문화유산보다는 주로 사람들의 정취가 묻은 골목길 이야기다. 2017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10권이 창덕궁을 비롯한 5대 궁궐, 성균관, 동관왕묘를 다룬 것과 대조적이다. 유 이사장은 현재진행형의 서울 역사를 글로 남기며 ‘100년 후 사람들에겐 내 책이 기록이자 증언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 저자는 적산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지은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에 살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유 이사장은 지난 25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궁 밖의 지역은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어떻게 써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굉장히 어려웠다”며 “사실 궁궐 중심으로 쓴 9·10권으로 서울 답사기를 마칠까 생각했었다”고 했다.

저자의 엄살과 달리 글은 유년 시절 경험이 섞여 더욱 생생하다. 11권의 부제는 아예 ‘내 고향 서울 이야기’다. 유 이사장은 옛 창신동 골목을 설명하며 박수근 화백의 그림 ‘아기 업은 소녀’를 불러낸다. 그 시절 골목에는 딱지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땅따먹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유 이사장의 누나는 그림 속 소녀처럼 막냇동생을 업고 돌봤는데, 어찌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싶던지 동생이 잠이 들면 집에다 뉘어놓고 나와 줄을 넘었다고 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글들을 읽다 보면 정겨운 풍경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11권에는 청와대의 문화유산 이야기도 나온다. 문화유산 전문가인 그조차 ‘미스터리’라는 건물이 있다. 청와대 관저 옆 침류각이라는 건물이다. 청와대 안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오래된 한옥이다. 기품 있는 누마루 형식과 드므(궁궐 곳곳에 뒀던, 화재 대응용 물을 담아두던 넓은 독) 등을 보면 왕가의 건축물로 추정되는데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서울편은 12권(서울편 4편)으로 끝을 맺었지만 앞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3권가량 더 출간될 예정이다. 1993년 닻을 올린 이 시리즈는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다. 유 이사장은 “다음 시리즈는 ‘국토 박물관 순례’를 콘셉트로,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시작으로 그간 쓰지 않은 곳들을 거쳐 독도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고 했다. 이미 다음 책 집필에 들어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재미 중 하나는 저자가 발로 뛰어 찾은 해당 지역의 맛집들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 없던 시절에는 이 책이 국내 여행 맛집 지도였다. 이번에 소개된 인사동의 사찰음식점 ‘산촌’, 막걸리집 ‘싸립문을 밀고 들어서니’ 등은 주말 나들이 전에 모바일 지도 앱에 저장해 둘 법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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